수많은 나의적 “나의 자아”가 지우지 못했던
“나의 기록“ 그 기록은
나에게 매우 복합적인 선물을
한번, 두번, 그리고 지속적으로 매번 나에게 돌려주었다.
다시한번 해고를 당하고 나의 블로그 앞에 앉은 나는
내가 쓴 글의 부끄러움도 떠올랐지만, 그보다 앞서서 들은 생각이 있다.
1. 윤회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위안과 사랑이 되다.
“다행이도 내가 작년에 이어서 이 이후의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겠구나.“
”처음부터 시작하는 고통과 막연함에서 시작하지 않는구나“라는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
그동안 매번 새로 시작되는 반복과 윤회의 고리가 끝나지 않던 나의 감정에, 가뭄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위로가 되었다.
2. 주제와 관념의 전환에 대한 단서
기록된 글을 바라보면서 느낀부끄러움이 무엇이었을까 느낄 수 있었다.
그때그때의 감정과 욕구에 의해서 만들던 기록들은
그때의 풋풋함과 어리석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에게 긴급하고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매번 새로운 시작을 하기전에 앞서서
어떻게 주제를 잡고 나는 무슨말을 하고 싶는지 모색한다.
그때마다 거창한 꿈을 꾸지만
나에 대한 경향과 변화를 느끼지 못한체
수행하고 반복하고 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그때의 감정을 기록하고 남겨둔 목록들은
나의 사고의 북극성이 되어주었다.
다음 항해의 기준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런 기준이나 도움이 없이
“제대로”, ”온전히“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나를 바라볼
필요도 능력도 없었다.
남겨둔 기록음 너무나 자연스럽게 힘들이지 않고
역행하지 않고 순리적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3. 나의 현재는 감정의 배설
나의 현재를 거창하게 생각하고, 그 오만은 나를 좀먹었다.
온전한 내 소유의 표현과 기록은 그대로 나를 보여주었다.
그런 감정의 배설은 타인을 위함이 아니다.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굉장한 이기적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매우 신사적인 방법이다.
얼마나 행복한가.
자기자신을 위한 최고의 이기심이 용납되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4. 온전한 자아를 만나고 위안받는다.
형이상학적 세상에서 나의 위치와 변위를 만듬에 있어서
나는 어떤 디딤돌을 딛고 서 있을까?
아무런 기준도 제약도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시작점을 결정할 것인가?
치열하게 세상살이 월급살이를 사는 와중에
그 바쁜 삶과 도전의 과정에서 정신의 표류 과정에서
나의 사고와 기준을 지킬 수 있을까? 유지하고 있을 수 있을까?
기록은 그런 유지를 위한 에너지를 1푼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너무도 편리하고 편안하다. 편안함에 이르러 다음을 꿈꿀 수 있다.
5. 아둔한 나는 그런 위안도 스스로 걷어차고 고통을 온몸으로 때려맞는다.
나는 내가 뛰어난 사람이라 생각해서 기록에 의지할 생각응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능력이나 상황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많은 인생의 시간을 소비했기 때문에
일분일초도 나의 자존감 따위를 바라볼 새가 없다.
나의 인생에서
그런 항상성을 위해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은
너무도 소모적이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방어적인 자의식을 부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고통을
온전히 받아내야함을 깨닫는 지혜가 없는 사람이었다.
시간과 후회와 고통 그리고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시점에서
강제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어찌하여 이렇게 아둔하단 말인가.
어떻게 이렇게도 부모가족들에게
불효불충할 수 있단말인가…
6. 그래도 내 기록을 지울 수 없다.
나의 아둔한 자존심보다도 지금의 평안함이 너무나 중요하다.
그런 편안함이 나를 다음단계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에너지를 아껴준다.
그런 편안함이 나를 주변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줄 수 있다.
내가 이 간절한 상황에서 무슨수로 이 혜택과 행복을 포기할 수 있을까?